간식으로 좋은 감자와 고구마의 유래

반응형

학창 시절에는 항상 배가 고팠다.

부족하진 않았지만 여유가 있던 가정형편이 아니었기에 빵이나 과자와 같은 가공품은 집에서 볼 수가 없었다.

대신에 어머니께서 늘 테이블에 여름엔 찐 감자와 겨울 연 찐 고구마를 올려놓으셨다.

먹는 게 궁하고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성장 시기였기에 이런 간식들은 그야말로 없어서 못 먹었다.

매일 먹으면 물리지 않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매일 먹어도 맛있었던 거 같다.

특히 겨울에 구워 먹는 고구마는 성인이 되어 나이가 든 지금에도 그때의 그 맛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먹을게 풍족하고 군고구마보다 맛있는 것들이 넘쳐나지만 그때에 먹던 군고구마맛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게 추억의 맛이 아닌가 싶다.

고구마는 조선시대에 외교사절단이었던 '조엄'이 들여왔다.

조선시대에는 해외로 파견되는 외교사절단을 통신사로 불렀는데 일본과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외교가 단절된 상태였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요청으로 외교를 재개하여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조선영조 때(1763년) 문신이었던 조엄은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던 중 대마도에 들리게 된다.

당시 척박하고 생물이 살기 어려운 땅이 었던 대마도에 고구마가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먹을 것이 늘 부족해 힘겨운 생활을 하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하에 고구마를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고구마는 한국에 전파되었다.

 

'고구마'란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일본에서 고구마를 '고코이모'로 부르고 있었다.

'고코'는 효행을 뜻하는 일본어와 감자나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 전체를 가리키는 '이모'가 합쳐진 일본말로 그 뜻이 '부모에게 드리는 작물'이다.

고구마의 전파와 함께 단어를 그대로 가지고 와 고코이모로 불렀는데 이후 한국에 고구마가 전파되면서 고 코 이모가 변화하여 고구마가 된 것이다. 

 

감자는 과거에 한자어로 '북저'나 '토감저'로 불렸는데 이후 '토감저'가 '감저'가 되고 다시 '감자'로 변화되어 쓰이게 된 것이다.

고구마는 추운 한반도 위쪽 지방보다는 아랫지방에서 잘 자랐는데 그래서 고구마는 '남 저'로 불렸고, 감자는 '북저'로 부르게 된 것이다.

감자가 유입된 경로는 북쪽 지방, 유럽 쪽에서 이미 경작되었기에 북쪽에서 전파되었되는 설로 인해 '북저'로 부른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가 즐겨 먹는 감자탕의 감자는 여기서 말하는 감자가 아니다.

감자탕에서 말하는 감자는 '돼지등뼈에 든 척수'를 감자라고 부른데서 유래된것이다. 

 

고구마보다 감자가 먼저 한국에 전파되었고 고구마는 한참 나중에 전파되었다.

이걸 볼 때 우리나라에서 작물이 해외로 전파된 경우를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은 해외에서 유입된 경우가 많은데 잘 찾아보면 우리나라가 원조인 작물도 많이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이부분을 중점적으로 찾아봐야겠다.

반응형

'기원과 유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금치의 어원과 효능  (2) 2020.10.14
시나위의 뜻과 유래  (0) 2020.10.11
흥청망청의 뜻과 유래  (0) 2020.10.05
비빔밥의 기원과 유래  (0) 2020.10.03
조선시대 과거시험장 난장판의 뜻과 유래  (0) 2020.10.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