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시험장 난장판의 뜻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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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은 국어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여러 사람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

그 유래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확인가능하다.

조선시대에는 시험을 통해 조정에 진출할 수 있는 과거시험이 있었다.

초기에는 응시자격에 일부 제한이 있었지만 후기에는 응시자격제한이 풀이면서 동등한 기회를 얻어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양반도 과거시험에 통과해 조정 진출해야 했고 진출하지 못하면 이름만 양반일 뿐이었다.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만큼 조선시대 남자들은 오로지 과거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시험응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시험을 치뤘는데 시험이 치뤄지는 장소를 가리켜 '난장'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관리가 되는 방법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르는 식년시와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상시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당시에는 시험을 거치지 않고 문음이나 음서를 통해 가문의 힘으로 관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문의 힘으로 관리과 된 사람과 실제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한 사람과는 출세 속도가 차이가 있어 무조건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기를 원했다.

 

그로인해 과거시험에 급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점자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는 다양한 제도를 시행했다.

답안지 채점자가 시험자의 신분을 볼 수 없게 하는 봉미가 있었고, 아예 답안지와 응시자의 인정 정보를 분리해 채점이 끝난 후에 확인하게 하는 할 봉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마치 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관들의 블라인드 테스트와 유사하다.

하지만 대리시험이나 시험문제 유출 등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부정행위는 골칫거리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과거시험은 크게 환영받고 흥했지만 반대로 부정행위가 도를 넘어섰다.

과거시험의 응시자격이 조선 후기에 더욱 확대되고 시험횟수도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난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압사로 죽는 사람까지 나왔다.

부정행위는 더욱 더 심해졌고 응시자는 넘쳐나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 모습이 '난장판'으로 표현 된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대책없이 꾸역꾸역 이끌어오던 과거시험은 갑오개혁이 일어나면서 폐지되었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매일이 시험의 연속이다.

과거시험이 있던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시험으로만 나를 평가받아야 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다.

시험이 없는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마치 출구 없는 터널마냥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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